② 나의 메이데이… 제1회 영상원 학생회배 노동절 수기 공모전 응모작
Citi 100과 함께 하던 나날들
명 쿄
수능 공부하던 시절의 모든 상식을 까맣게 잊은 나는, 더 이상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왕년에는 평창동에서 여고생 3학년 그룹 과외에, 초등학교 2학년 영어회화 과외까지, 과외시장의 다양한 영역을 포섭하던 나였지만 그것도 안하다보니 다 까먹었고, 수학도 새까맣게 잊고만 것이다. 제 딴에는 거기에 ‘학벌사회’에 기생하지 않기 위해 과외 알바를 거부하겠다는 고민을 부여했지만, 솔직한 심정에서는 그걸 못하니 참 먹고 살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만만하고 돈도 잘 벌리면서 내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헤매었지만 세상이라는 게 그리 녹록치 않았다. 아무데도, 내 능력을 알아봐줄 곳은 없었다. 비참했고, 원망스러웠다. 바보들! 인재를 몰라보고!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정말 나는, 멍청한 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공사장 막노동에도 잠깐, 무대철거보조도 잠깐, 이삿짐도 잠깐 고개를 내밀었고 결국에는 배달에 큰 매력을 느껴 원동기 면허를 따게 되었다. 원동기 면허라는 게 참 간단해서 단 하루만에도 가서 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알바가 바로 D피자 배달 알바! 시급 4700원이라는 말에 혹해서 갔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알고 보니 진짜 시급은 법정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3800원이었으며 4700원이라는 것도 1시간동안 세 군데 배달을 다녀온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거짓말 광고에 속아서 간 것이었지만 이왕 간 거니만큼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날쌘돌이처럼 쌩쌩 달리면 4700원도 가능하겠지 싶었다. 그러나 웬걸. 한 시간 동안 세 군데에 배달을 간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였다. 나는 미친 듯이, 죽음을 각오하고 월곡 로터리를 질주하고 어쩔 땐 우리학교나 동덕여대에도 갔지만, 한 시간에 두 군데 배달을 다녀오면 천만다행이었다. 때때로 엄청난 사고의 위험도 많이 겪어서 이러다가 정말 죽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생명의 위협을 느껴 벌벌 떨던 나는 쁘띠부르주아처럼 쫄면서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더 좋은 직장을 운 좋게 건지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칡냉면 전문점 배달 아르바이트였다. 시급도 5000원이었고 배달을 한 군데를 가든지 두 군데 가든지 차이가 없었다. 채용 당시 나는 운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사장님께서 식사 시간에 밥까지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12시간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6만원이었다. 쉬지 않고 달리면 월180만원이다! 미친 듯이 달렸다. 배달 영역이 워낙 넓어서 동쪽으로는 신설동, 서쪽으로는 정릉까지 내달렸으며 돈암동과 월곡동 근방의 아파트라면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재밌었다. 도로를 달리는 것도 참 기분이 좋았고 아파트단지에 가면 집집마다 문을 열었을 때의 제각각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참 재미있었다. 어느 집은 아름다운 여성이 활짝 웃으며 문을 열고, 어느 집은 러닝셔츠차림의 대머리 아저씨가 문을 열고, 또 어느 집은 쥐방울만한 꼬맹이들이 문을 열었다. 사람 사는 풍경이라는 게 이렇게 제각각이면서 하나같을 수 있다는 게 참 재밌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나는 그 냉면집에 소속된 여덟 명의 배달부 중 배달 탑을 차지하던 날도 꽤 생겼었다. 하루에 40건 배달! 한 시간에 세 건 이상 배달했다는 건데, 이건 정말 쉽지 않은 달성이었다. 배달부로서의 자부심이 극에 달하던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도 잠시, 죽음의 위협은 하나둘씩 늘어갔고 로터리가 점점 무서워졌다. 엘리베이터는 지긋지긋해졌으며 점점 우울해지면서 나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대고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하나씩 찍어대기 시작했다. 고달픈 나날들이었다. 제기랄,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형 지금 뭐해요? 영화 찍는다더니 냉면 배달하는 거예요?”
어느 날은 ‘모’ 대학 학생회관에 배달을 갔더니 ‘모’ 동아리방 문 앞에서 꼰대가 된 ‘모’ 후배들을 마주해야했으며, 어떤 날은 길음 뉴타운 언덕길을 달리다가 냉면을 모조리 엎고 다시 돌아가서 냉면을 퍼 와야 했다. 쌍욕을 먹고 뉴타운을 달리는 그 기분이란! 그럴 땐 정말 정신없이 달려야 했는데 그러다가 죽을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리 유서를 쓸까, 아니면 건설교통부에 월곡 로터리 정비를 정식으로 건의하는 민원을 넣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소심한 나는 결국, 쁘띠부르주아의 자식답게,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말았다. 더 이상 배달부 욕하는 놈들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흑흑, 너무 쉽고 안이하며 뻔한 88만원 세대 좌절기라서 미안하다.
요즘 나는 다시 생활고와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알바를 꼭 해야 하는데 저기 저 교차로 신문 위에, 좝코리아 이너넷 홈페이지에 빼곡하게 펼쳐진 알바생 노동시장의 세계가 월곡 로터리의 구멍 난 아스팔트 도로처럼 두렵고 섬뜩하게 느껴진다. 왜 배달부 노조는 없는가. 빌어먹을 신자유주의와 노동유연화의 파고 속에서 나는 이제 어찌 살 것인가. 언제나 나와 함께하던, 브레이크가 잘 안 밟히던 무적의 대림 혼다 씨티 100을 타고 청와대 정문을 들이박고 싶은 나날들이다. 앗, 이러면 선거법 위반인가? 아니면 테러방지법 위반인가? 말로 싸지르는 것도 점점 두려워진다. 나이가 들었나보다.
글쓴이 _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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